의리의 소소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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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대유럽의 드루이드
  2. 대마법사 멀린

고대유럽의 드루이드

의리있는 세상(이전 자료)

1.드루이드

-켈트인의 대현자 DRUID

술자의 분류 : 드루이드

행사하는 소환술: 신을 소환하는 점술, 기후 통제

힘의 근원 : 오크 신목의 마력

술자의 조건 : 고도의 지식과 마력

대표적인 술사 : 오로비스트, 루프

켈트의 땅(현재 영국과 프랑스)에서 신의 의사를 전하는 존재로서 정치와 입법, 종교, 의술, 점, 시가, 마술을 행한 자들을 드루이드라고 한다. 신과 요정이 인간과 함께 살았던 고대 유럽에서 유일무이한 최고의 소환술사였다.


+드루이드란?

켈트어로 '드루'란 떡갈나무(오크), '위드'는 지식을 의미한다. 이 두 단어가 드루이드의 어 원으로 여겨진다. 확실히 그들은 오크를 신목으로 삼아 제사지냈으며,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고대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는 당시엔 아직 미개했던 유럽을 침공하여 켈트인 들과 접촉했다. 그의 저서 <갈리아 전기>에 따르면 당시 켈트 사회에는 두 종류의 계급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드루이드와 기사였다.

그 밖의 사람들은 노예와 마찬가지로 왕의 명령에 복종했던 듯하다. 하지만 켈트 왕은 실질적으로 부족의 리더가 아니었다. 드루이드가 신의 의지를 물음으로써 고귀한 가문의 기사들 중에서 왕이 선출되었다. 즉, 왕은 장식물에 지나지 않았을 뿐 실권은 드루이드가 쥐고 있었던 것이다.

신을 숭배하지만 실제 정치는 인간의 손으로 행한 로마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기는 켈트인 사회가 이상해 보였다. 그러나 신의 의지에 따라 부족의 장래를 점치고 정령 소환술을 다루는 드루이드는 켈트 사회 속에서 주술적인 지도자로서 군림했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유럽권 마술사들의 원조였다.


+나무의 정령

일반적인 드루이드는 오크를 깎아 만든 지팡이를 갖고 있었다. 지팡이의 재료가 되는 오크는 파나케아가 기생하고 있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드루이드의, 아니 켈트인의 신앙 대상은 오크였다. 당시 유럽은 대부분이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인간이 거주하기 위해 개척된 토지는 수목의 바다에 뜬 작은 섬과 같았다. 나무를 신으로 숭배했던 것은 켈트인 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신목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고대 앗시리아의 아슈르바니팔 왕(기원전 9세기) 또한 날개를 가진 원반상의 태양과 생명의 나무로 신성을 나타냈다.

나무로부터 신탁을 받고자 하는 행위나, 생활권에 성스러운 숲이 존재하는 것은 세계 어디에나 있는 흔한 일이다. 코스 섬의 아스클레오피오스 성소에서는 사이프러스(측백나무의 변종)을 베어 쓰러뜨리는 것이 금지되어 왔었다. 로마인들도 로마의 창시자 로물루스와 관계 있는 거룩한 무화과나무를 숭배했으며 그 나무가 시들면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오크 숭배와 파나케아

유럽의 숲에서 오크는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였다. 고대인이 남겨놓은 문헌에도 자주 나오며 유적에서는 오크로 만들어진 길도 발견되었다. 또 오크 열매는 식용으로도 사용했다. 그렇다면 숭배의 대상인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거나 그 열매를 먹어도 괜찮았을까? 실제로 오크 숭배는 특정한 나무나 숲이 그 대상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드루이드가 신성하다고 본 것은 파나케아가 달라붙어 있는 오크였다.

보통 파나케아는 오크에는 기생하지 않는다. 좀처럼 볼 수 없기에 더욱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파나케아가 휘감겨 있는 오크 그것은 신이 심은 신성한 나무로 생각되었다.


+드루이드가 널리 보급시킨 사상

켈트인은 환생 사상을 믿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에게도 영이 있으며, 영혼은 불멸이라고 보았다. 드루이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입구, 새로운 삶의 휴식기간이라고 주장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종족'이라는 개념도 켈트에서 시작된 사상이었다. 다난신족이나 요정, 눈에 보이지 않는 요정의 나라 영원한 젊음의 나라 같은 것들은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떨어진 숲 속에 존재하며 이쪽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어졌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신이 영웅과 결혼하거나 영웅이 요정의 연인이 되거나, 요정이 인간의 아이를 낳는 다는 식의 전설이 많이 남아 있다.


드루이드의 종류

드루이드느 큰 권력을 갖고 있었지만 너무나 광범위한 일을 했기 때문에 점차 세 계급으로 분화되어갔다. 첫 번째는 입법자, 두 번째는 제사와 정치, 세 번째는 시인이다. 각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드루이드(입법자)

이 계급에 속한 자는 고도의 지식을 소유하며, 입법이라는 가장 중요한 일을 담당했다. 드루이드에게는 여러 가지 특권이 주어지므로 많은 사람들이 드루이드가 되고자 지원했다고한다. 지원자는 숲 속 깊은 곳이나 동굴 속에서 혹독한 고행을 쌓았다. 드루이드의 비의를 전 승하기 위해서는 20년이나 되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이렇게 얻어진 지식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머릿속에만 기록되었다. 엄격한 고행을 거친 드루이드가 된 자들의 정점에는 우두머리가 있었다. 그야말로 켈트 최고 권력자가 되는 셈인데, 그런 수장은 많은 드루이드들 중에서 선거로 뽑았다.

와테스(제사와 정치)

와 테스는 드루이드의 조수 또는 관리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조수라 하더라도 권력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주로 드루이드가 집행하는 제사 의식을 거들고 제물을 다루는 일을 담당했다. 이외에도 드루이드의 대변자로서 많은 일들을 처리했다.

시인(기록자)

시인은 전설이나 신화, 영웅담을 전승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몇 세대에 걸쳐 형성된 과거의 기록을 전승할 수 있도록 훈련받았다. 시인은 마치 살아있는 기록장치 같았다. 나라의 법률과 종교의 교의, 왕가의 역사, 전쟁의 양상까지 모두 은율을 붙인 시가로서 암송하며 전했다.

시인은 훗날 '필라(전설이나 고사를 외어서 이야기하는 자)' '보에르지(악기를 켜며 노래하는 시인)' '바드(음유 시인)' 등으로 분화되어 발전해갔다. 시와 언어는 영혼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며, 드루이드는 주문처럼 초자연적인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졌다. 이 때문에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바드는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그들은 역시 드루이드의 일종이며 왕보다 상위 계급이었다. 시인의 기분을 상하게 한 탓에 자신의 목을 내놓은 왕이 있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멸망과 부흥

켈트인은 용맹했지만 민족으로서의 통일은 이루지 못했다. 한때는 폭발적인 기세로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지만 그로 인해 각 부족은 소원해지고 말았다.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한 후 세계 정복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로마가 통일국가였던 것에 비해, 수는 많지만 부족 단위로 대항할 수밖에 없었던 켈트인에게 승산은 없었다.

이런 가운데 대 로마 전선을 펴자고 결심했던 것 역시 드루이드였다. 켈트인의 촌락에는 반드시 드루이드가 있었으며, 촌락마다 드루이드끼리의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드루이드의 수장 둠노릭스에 의한 호소와 베르킨게토릭스의 의한 봉기로,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는 갈리아에서 2년간이나 발이 묶였다.

로마인은 서유럽 제압 후 켈트인에게 종교 금지령을 내렸다. 원래 종교에는 관대했던 로마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그만큼 드루이드를 위험시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로 인해 술자는 점차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와테스와 시인은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최고 권력자인 드루이드의 존재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들은 권력자이며 고도의 지식을 갖고 있었던데다 마술까지 행사했기 때문이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켈트인이 점차 로마에 흡수되면서 드루이드의 권위는 실추하고 지원자도 없어졌다.

이리하여 드루이드는 후계자가 끊기고 전멸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1872년 독일에서 드루이드의 결사가 설립되었다. 이것은 훗날 다른 결사와 결합하여 드루이드는 국제적 비밀결사가 되었다. 그 회원은 '인식과 지식' '예술 이해와 의욕' 이라는 두 단계를 거쳐 '결정과 의욕'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제3의 단계로 나아갔다.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도 1908년에 블레넘 성에서 드루이드 협회에 입화했다고 한다.



+드루이드의 소환술

피로 얼룩진 의식

드루이드는 정령이나 신을 소환하여 자연을 다스리고, 신탁을 행하며 병을 치유했다. 의식때 드루이드는 오른손엔 오크 지팡이, 왼손엔 파나케아를 잘라 만든 황금낫, 그리고 흰옷에 금 흉패와 마법의 버클을 둘렀다. 의식은 매월 6월(월령6일)에 거행되었다. 정기적으로 신탁등을 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소는 오크로 둘러싸인 성스러운 숲으로 정해져 있었다. 숲 중심에 있는 오크 거목의 뿌리 부분에 드루이드석을 놓으면 준비는 완료된다. 드루이드는 오크 나무에 올라가 황금낫으로 파나케아를 자른 다음 흰색 천 위에 올려놓는다. 그런 후에 제물로 준비해둔 두 마리의 흰 수소를 도살했다. 이것이 의식의 대략적인 흐름이었다.

전투의식

전 투 의식은 전사를 보호하고 그들을 용감하게 만들기 위해 거행되었다. 이 술법은 한꺼번에 많은 자들에게 효과를 나타냈다. 드루이드의 술법을 시행받은 전사는 열광적으로 변했으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전투에 임해서는 갑옷 등의 방어 도구는 물론 옷조차 착용하지 않았다. 마술로 신의 힘이 충전되어 전신이 뜨겁게 끓어오르기 때문이었다. 다시 옷을 입을 수 있는 상태로 진정되기 위해서는 냉수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기후 통제와 왕의 선출

드 루이드의 술법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기후 통제술일 것이다. 이 술법은 드루이드가운데서도 특히 우수한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도의 소환술이었다. 신의 힘이 깃들여 있는 오크 지팡이에서 힘을 끌어내어 술법을 사용했다. 그들은 바람이나 안개를 자유자재로 발생시키고 때로는 태풍조차 일으켰다. 또 드루이드는 왕도 뽑았다. 우선 두 마리의 소를 제물로 정한 후 그 고기를 드루이드가 먹고 잤다. 그런 다음 드루이드의 꿈속에 나왔던 자가 왕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쓸모 없어진 왕을 의식의 검으로 찌른 후, 그 피가 나오는 상태에 따라 다음 왕을 선택하는 일도 있었다.

켈트의 대제

5년마다 거행된 켈트의 대제에서는 많은 제물이 신들에게 바쳐졌다. 제물로 사용하기 위해드루이드는 죄인을 대기시켜놓았으며, 머릿수가 부족한 경우에는 전쟁을 일으켜 거기에서 발생한 포로로 보충했다. 많은 제물을 바침으로써 보다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제물로 풍작을 기원하기도 했다.

제물을 죽이는 방법에 관해서는 횡경막 상부를 칼로 찌르는 식으로 그 방법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희생자가 쓰러졌을 때 자세나 수족의 경련 상태까지 모두 신탁의 기준이 되었다. 검을 사용하는 방법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제물을 신전 기둥에 매달아놓는 일도 있었다. 또 버드나무 가지나 건초로 만든 거대한 형상 속에 희생자를 밀어넣고 횃불을 던져 불태워 죽이는 일도 있었다. 버드나무 가지에는 수목이나 식물의 정령이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드루이드의 성지와 재판

드루이드들은 매년 1회, 카르누테스족 영지의 국경지대에서 회합을 열었다. 이곳은 그들의 성 지이며 켈트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 성지에는 각지에서 분쟁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재결을 받기 위해 찾아왔다. 드루이드는 신탁에 따라 재결을 행했다. 여기서의 재결은 절대적이며, 개인이든 부족이든 무조건 따라야했다. 이 금기를 깨뜨린 자는 공희(신에게 희생을 바치는 의례)가 금지되었다. 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못하면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불경한 죄인이 되는 셈이어서 모두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드루이드의 용자, 루프

루 프는 리용, 리그니츠, 라이덴 등 켈트의 신들을 자신의 육체 안으로 소환한 술자로 유명하다. 그는 황금투구와 갑옷을 착용하고 녹색 어깨띠를에 황금 샌들을 신었다고 한다. 하프를 연주하고 시를 창작하고 집을 짓고, 철을 단련 했으며, 마술을 이용해 전쟁에서 이기는 등 그에 관한 많은 전설이 남아 있다. 그의 술법은 매우 다양해서 신들의 소환 외에도 자신이 단련한 무기에 마법을 부여할 수도 있었다. 나아가 척후나 전령으로서 까마귀를 다루었다.

+드루이드와 스톤헨지

유럽 각지에는 스톤헨지라고 불리는 수수께끼의 고대 유적이 남아 있으며 이것이 드루이드의 의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그 관련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증명된 바가 없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 있었다.

1831 년,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노르마>라는 오페라가 상영되었는데, 내용 중에 '스톤헨지를 배경으로 드루이드가 황금낫으로 파나케아를 자르는' 장면이 있었다. 사실 이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장면 연출이었다. 이 장면의 배경은 원래 '신비의 숲'이었다. 이전에 영국에서 새롭게 바꿔 대성공을 거둔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신비의 숲 대신 스톤헨지가 배경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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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 멀린

의리있는 세상(이전 자료)


-멀린

-영국 역사상 최고의 궁정 마술사 MERLIN

술자의 분류 : 드루이드

행사하는 소환술 : 기후 통제, 신탁, 정령 소환

피소환체 : 정령, 용

힘의 근원 : 오크 신목의 마력, 스스로의 생명력

술자의 조건 : 고도의 지식과 마력


+세련된 드루이드

아더 왕의 전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위에 박혀 있는 성검 엑스칼리버를 뽑은 것을 계기로 영웅이 된 아더는 영국의 왕으로 군림했다. 이 아더 왕의 참모로 유명한자가 바로 멀린이다. 소환사로서 그를 분류한다면 아마도 드루이드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정통 드루이드라고는 할 수 없다. 멀린이 살았던 시대에 켈트 문명은 로마의 침략을 받아 이미 쇠퇴했기 때문이다. 멀린 또한 드루이드의 술법을 신과의 교류수단이 아니니 마술로서 인식했던 듯하다.  

멀린에게는 과거의 드루이드들처럼 거느려야 할 부족들이 없었다. 게다가 드루이드의 존재는 로마에 동화된 켈트인들로부터 "낡은 사교를 위해 순직하는 자"로서 경원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드루이드가 되고자 한 자는 '오직 심원한 지식에 다다르기를 원하는' 구도자였을 뿐이었다.


+기독교화와 드루이드의 변화

드루이드는 마술사인 동시에 정치가이며 사제였다. 로마인에게 정무를 뺏긴 후 켈트에는 기독교가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고, 드루이드는 사제로서의 역할까지 잃고 말았다. 드루이드는 오직 마술사로서만 존속이 허가되었다. 이 시대에는 켈트인들 사이에서조차 드루이드가 행하는 의식이 모두 이상한 마술에 관한 것이라고 인식되었다. 멀린을 비롯한 드루이드는 기존의 술법 외에 정령을 불러내는 술법을 개발했다. 훗날 유럽에는 정령 소환을 전문으로 하는 월록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그 선레였던 셈이다. 사람들은 일찍이 드루이드를 신의 사자로 믿었지만 점차 마술사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힘을 두려워함과 동시에 마술사의 존재를 혐오하게 되었다.


+대마법사의 전설

아더 왕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전설이므로 멀린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고전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몽마(인큐버스)에 의해 임신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선이 초래되자 지옥의 몽마들은 이에 대항할 사악한 사도를 탄생시키고자 했다. 그 결과로 태어난 멀린은 그리스도와 동등한 힘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태어난 즉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사악해지지는 않았다. 그 외에 요정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마술사로서의 소질이 있었다. 드루이드는 원래 수행을 통해 지식과 마력을 손에 넣지만, 멀린은 소질을 타고난데다가 수행까지 더했으므로 보다 강력한 술자가 될 수 있었다.


+왕국에서의 활약

멀린은 아더왕이 태어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살았던 듯하다. 그 무렵 그는 로마의 드루이드 배제정책으로 인해 지배계급에게 냉대를 받았다. 그러나 아더를 발견한 후 그를 육성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는 궁전에 들어가 왕을 보좌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까지는 멀린을 보는 세간의 눈길이 그리 좋지 않았을 것이다. 아더 왕이 엑스칼리버를 바위에서 뽑았을 때도 "저것은 마술사의 환영에 의한 속임수가 틀림었다"고 일부사람들은 비방했다. 그럴 정도로 드루이드는 신용할 수 없는 자로 여겨졌다.  

또 검의 힘을 믿는 기사계급에게도 마법을 사용하는 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 존재였다. 그러나 아더 왕을 섬기면서부터 멀린의 이름은 좋은 의미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더 앞을 가로막아 선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또 적절한 조언을 해줌으로써 기사 사회로부터도 이전의 나쁜 인상을 불식시키고 신용을 얻었다.


+주문과 비비안

마술 분야에서 멀린이 이룬 공적 중 한 가지로, 마술을 만인이 취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들 수 있다. 그전의 드루이드들은 2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엄격한 수행을 쌓으면서 마술을 터득했다. 그러나 멀린이 주문 그 자체에 힘을 넣는 방법도 궁리했다. 즉, 주문만 알고 있으면 개인의 마력이 그리 높지 않더라도 마술을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처럼 멀린이 이른바 인스턴트 주문을 개발했던 이유는 자신의 기술을 이어받을 후계자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아더를 만날 무렵 이미 상당한 고령이었던 그로서는 제자를 천천히 육성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소질을 가진 자가 단시간에 마스터할 수 있는 주문을 만들어냈다. 무한한 마력 덕분에 영국 최대의 마술사로 평가받은 멀린이지만 한때는 현자답지 못한, 보통 실수를 범한 일이 있었다. 이 실수는 그의 목숨을 뺏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멀린은 비비안이라는 여성을 사랑했다. 그는 나이 차이가 많은 연인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녀에게 어떤 주문을 가르쳐주었다. 바로 인간을 한 장소에 감금하는 주문이었다. 비비안은 멀린과 사이가 틀어지자 멀린에게 그 주문을 사용했다. 이리해서 대마법사 멀린은 스스로 고안해낸 주문 때문에 영원히 유폐당하고 말았다.


+멀린의 소환술

멀린 또한 드루이드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오크 지팡이를 늘 지니고 있었다.그는 정령을 불러모으기 쉬운 장소를 몇 군데 알고 있었으며, 거기에서 여러 가지 마법을

행사했다.


+용의 소환

아더 왕의 아버지, 우더 펜드라곤이 브리튼 섬을 통일시키기 위해 활약했던 중에 생긴 일이다. 당시 멀린은 우더를 도와주고 있었다.우더는 콘월 공작을 상대로 싸웠지만,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를 뽑음으로써 영국의 왕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결과 싸우지 않고 승리를 거뒀다. 향연이 벌어지고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때 우더 왕은 콘월 공작의 부인인 이그레인을 보고 반해버렸다. 이로 인해 다시 싸움이 일어났다. 그런데 콘월 공작의 성은 안벽 맞은 편에 있는데다 양측의 군대에 의해 길이 가로막혀 있었다.

교착 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밤이 되자 멀린이 왕에게 말했다. "우더여, 너의 정욕이 초래할 결과가 무엇이든지 상관 없다면 용을 불러내 저 성까지 건너게 하자." 이윽고 왕의 승낙을 받은 멀린은 주문으로 날씨를 조종해 안개를 발생시켰다. "우더여, 너의 정욕이 용에게 비상한 힘을 주어 바다를 넘어서 저 성까지 다다를 길을 보여 줄 것이다."

이말을 들은 왕은 출현한 용을 타고 날아가 적의 성에 내려섰다. 우더의 모습은 멀린의 마술에 의해 콘월 공작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리하여 우더는 감쪽같이 이그레인과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이날 밤 임신하게 된 이그레인은 전쟁이 끝난 후 아더를 낳는다. 그리고 전쟁 또한 우더측의 승리로 끝맺게 된다. 한편 강대한 마력을 가진 멀린도 큰 마술을 행사하느라 체력을 모두 소모한 듯, 이 일이 있은 후 며칠 밤낮을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맸다.


+영혼의 예언

멀린의 육체는 비비안에 의해 갇혔지만, 그 영혼은 상당히 자유롭게 움직였다. 멀린의 영혼이 자주 사람들 앞에 나타나 예언을 했던 것이다. 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일이었다. 카를 대제 곁에서 활약하던 여전사 블라드만테 앞에 출현한 멀린의 영혼은 "너로부터 에스테 왕가가 창시되고 자자손손 번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며, 이는 그대로 실현되었다. 그 밖에도 신성로마제국 시대의 호엔슈타우펜가의 미래를 예언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멀린의 영혼은 대게 10년이나 20년, 혹은 백년 이상 미래의일을 예언했다고 한다.


+멀린과 관련된 명소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멀린과 관계 있는 여러 명소가 있다. 이는 멀린이 얼마나 유명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이들 명소에는 멀린의 유령과 묘 등이 있는데, 정통한 전설에 따르면 그가 비비안에 의해 영원히 봉인되어 지금도 살아있다고 한다. *멀린의 샘 : 브로타뉴의 발렌트에 있다. 1853년 바티칸 교황청이 금지령을 내릴 때까지 이곳을 순례하는 풍습이 현지에 남아 있었다.

*멀린의 동굴 : 틴타젤에 있으며, 이곳에는 멀린의 망령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

*멀린산 : 윌트셔의 말보로 칼리지의 부지 내에 있는 작은 산. 멀린이 매장되었다고 전해지는 장소 중 하나다.

*멀린 언덕 동굴 : 카마젠에 있는 동굴. 이곳도 멀린이 매장되었다는 장소 가운데 하나다.

*멀린의 묘 : 멀린의 묘라 불리는 장소는 이 밖에도 세 군데가 더 있다. 하나는 브르타뉴의 칸 듀 토르누아에 있는 무덤이고, 또 하나는 일 에빌레누, 그리고 오티 드 비비앙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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