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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Rupers
  • 05.03.2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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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란 육체를 가지고 있으며, 무덤에서 일어나 살아 있는 인간의 피를 빨아서 그 생명력을 빼앗는 죽은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뱀파이어는 늑대인간이나 몽마, 악마 등과 혼동되기 쉽지만 늑대인간과 비교해보면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 및 인육을 먹느냐 피를 빠느냐의 차이가 있고, 몽마나 악마와 비교하면 원래가 인간이었는가 아닌가 하는 차이가 있다.


뱀파이어의 영혼에 대해서는 시체에 들어간 악마라는 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죽은 자의 영혼이 그 자신의 몸에 들어간 것으로 본다.


뱀 파이어의 어원은 일설에 따르면 터키어의 "uber(마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세르비아어의 "vampir(날지 않는 사람)"에서 왔다고도 하고, 폴란드어의 "upior(날개 달린 망령)"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뱀파이어의 습성-
뱀 파이어는 원래 인간이었기 때문에 외견상으로는 거의 인간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손톱이 길고 흉측하게 구부러져 있으면, 피부는 팽팽하고 붉으며, 입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브람 스토커가 쓴 [드라큘라]에서는 그림자가 없거나 혹은 거울에 비치지 않는 다는 특성도 나온다.


그들은 낮에는 자신의 관 속에 들어가서 자고 밤이 되면 일어나 집 안으로 숨어 들어가서는 자고 있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 그리고 피를 빨린 희생자도 죽은 다음에 뱀파이어가 되어서 새로운 희생자를 찾아 떠돌아다니게 된다. 피를 빠는 방법은 상대방을 몰 졸라 죽인 다음 그 피를 빨기도 하고 자고 있는 상대방의 피를 빨아먹기도 한다.


뱀파이어가 피를 빠는 이유는 피가 생명력의 원천이므로 그 피 속에 포함되어 있는 상대의 생명력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자신이 소멸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다.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리면 이빨 자국이 남는다는 이야기는 [드라큘라]와 레 파뉴가 쓴 [흡혈귀 카밀라]등의 소설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그것에 따르면 뱀파이어의 희생자들에게는 목 언저리에 두 개의 바늘로 찌른 것 같은 상처가 있다고 한다.


죽어서 뱀파이어가 되는 인간으로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뱀파이어의 희생자가 된 사람을 우선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범죄자나 악인, 주술사, 사생아 등이 죽으면 뱀파이어가 된다고 한다.


그 외에도 고양이나 새 등이 시체처럼 누워 있는 것을 넘어 가려고 하면 뱀파이어가 되는 일도 있다. 시체들이 뱀파이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시체의 먹을 절단해버리는 방법 외에도 입 속에 화폐를 넣거나, 시체를 관 속에 넣을 때 밑을 보게 하고 자물쇠 등으로 뚜껑을 열지 못하게 하거나, 부장품(副葬品)을 넣거나, 입 속에 마늘을 넣는 등의 방법이 있다고 전해진다. 뱀파이어는 마늘은 싫어하기 때문에 창문이나 문에 마늘을 걸어놓거나 문질러놓으면 뱀파이어가 그곳을 통해서 집으로 침입할 수 없게 된다고 믿어지고 있다.


-대처 방법-
뱀파이어 퇴치 방법으로는 산사나무로 만든 말뚝으로 심장을 꿰뚫어버리는 방법이 잘 알려져 있다. 들장미나무나 물푸레나무, 백양나무로 말뚝을 만들기도 하고, 지방에 따라서는 새빨갛게 달구어진 쇠 말뚝을 사용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이는 본래의 퇴치수단이 아니라 단순히 뱀파이어를 무덤에 못박아 놓는 의미밖에 없다. 목을 자르는 방법도 알려져 있지만 가장 효과가 확실한 것은 뱀파이어를 태워서 재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이라고 한다.


또 한 뱀파이어를 무찌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도 있다. 그것은 뱀파이어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다. 뱀파이어는 피를 빨기 위해서만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과 성교해서 아이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사람이 아닌 부모를 가진 아이는 담피르(Dhampir)라고 불리며 뱀파이어를 죽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일단 죽으면 자신도 뱀파이어가 된다고 한다. 그밖에도 토요일에 태어난 사람은 뱀파이어의 정체를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하양 양막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크레스닉,Kresnik)은 붉은 양막을 가지고 태어난 뱀파이어와 싸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태양의 빛을 받으면 뱀파이어가 소멸한다고 하는데, 적어도 19세기 말까지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던 것 같다. 유명한 카밀라는 대낮에도 산책을 나갔고 뱀파이어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드라큘라 백작은 십자가에 접촉하기도 했지만 상처를 입거나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없었을 뿐더러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서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뱀파이어의 능력과 실태-
뱀파이 어의 능력으로는 우선 변신능력을 들 수 있다. 늑대, 쥐, 고양이, 개구리 등으로 변신할 수가 있으며 크기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가 있다. 이 능력 덕분에 어떠한 곳에서도 침투할 수가 있으며 자신의 무덤을 파헤치지 않고도 관 밖으로 나올 수가 있다.


또 한 뱀파이어는 늙지 않는다. 시체이기 때문에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시체라면 당연히 일어나야 할 부패 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덤을 파헤쳐보면 뱀파이어는 살아서 잠들어 있는 것 같은 상태로 관속에 누워있다.


-뱀파이어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예 를 들면 너무 빠른 매장에 따른 것이라는 설이다. 마비된 상태였거나 가사 상태에 있었던 자를 죽은 것으로 착각해서 매장해버린 경우, 이렇게 매장 되었던 사람들이 되살아나서 관을 열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죽은자가 뱀파이어가 되어서 돌아온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소름 끼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무덤 속에 묻혀 있었고 죽을 고생을 다해서 집으로 돌아와 보면 이번에는 뱀파이어라고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그 밖에도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가 사람의 피를 빠는 것을 본 사람이 이를 뱀파이어라고 생각했다는 설도 있다. 또한 썩지 않는 시체라는 설도 있다. 관이 완전히 밀폐되어 있거나 다른 어떤 이유로 바깥 공기의 침입이 방지되면 시체가 부패되지 않거나 혹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천천히 푸패가 진행되기 때문에, 관을 열어보면 그 안에는 매장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상태의 시체가 있어서 이것을 뱀파이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시체는 부패하지만 파문당한 자의 시체는 대지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썩지 않고 뱀파이어가 된다고 여겨졌다. 또 한편으로 성인(聖人)의 시체도 부패하지 않는대 이는 기적 때문이라고 믿어졌다.


돌림병, 특히 흑사병이 뱀파이어였다는 설도 있다. 뱀파이어의 피해자와 흑사병환자가 보이는 증상의 유사성, 그리고 흑사병이 유행한 시기와 그곳에 뱀파이어가 출현한 시기가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흑사병이 유행하기전의 이야기와는 연결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그런 주장이 일견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은, 뱀파이어를 퇴치하는 수단으로 시체를 소각하는 것이 돌림병에 걸려서 죽은 시체를 취급하는 방법과 똑같기 때문이다.



출저:love story poem





잉카의 전설로 본 흡혈귀의 유래

브 램 스토커의 소설<흡혈귀.드라큐라>로도 유명한 흡혈귀는 불사신의 괴물 중에서도 가장 두려움을 받고 있다. 인간의 혈액을 양식으로 하여 박쥐나 늑대 무리를 조정한다. 마법의 주문에 대한 강한 내성이 있고 더군다나 일반적인 무기에 의한 공격에는 전혀 상처를 입지 않는다.

또 흡혈귀에게 피를 빨린 사람이 흡혈귀화한 것은 유명하지만 <비카무.앙데드>등의 최상급 주문에 의해 스스로 부시해 흡혈귀화 한시키는 자는 <진조>또는<원조>오 불리우고 강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흡 혈귀의 원조는 당연히 잉카의 테카포틀리아일 것이다. 피와 살의 신이 인간을 피와살을 먹는 인간으로 바꾸어서 왕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그 증거로 잉카제국의 산제울을 들 수 있다. 산제을 잡아(즉.인간)서 옥을잘라 그 피를 마신다는 이야기가 흡혈귀화한 인간의 이미지를 만든 것이다.

흡혈귀의 소문이 유럽으로 전해진 것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고난 후이다. 이사건이 보고되자 스페인의 군함이 몰려갔다. 이때 간사람수가 300명을 조금 넘는 숫자 였는데 어떻게 아메리카 중부를 지배하고 있는 잉카제국이 무너졌는 가 하는 것은 역사의 수수께끼이다.

잉카의 전설 중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살육의 신인 테카포틀리아가 태양신(케찰코아틀)이 다스리는 잉카제국을 차지하려고 거짓으로 태양신은 산사람의 심장을 먹는다고 하여 태양신은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에서 추방되었다. 태양신은 자기가 제국에서 추방될 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해가 다시 뜰 때 난 다시 돌아와 제국을 되찾을 것이다."

이 전설을 믿는 사람들이 해가 뜰 때 잉카로 오고있던 스페인 군함을 본 것이다. 또, 이 함정의 장군모습이 케찰코아틀과 비슷하여 케찰코아틀이 돌아왔다 하여,잉카제국의 정권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제국을 넘겨 주었다. 이때 당시 스페인으로 돌아간 사람들 중에 잉카의 피의 추종자들에게 당한 자들이 정신적, 육체적 상처를 입고건너가 흡혈귀의 원조가 되었다. 이 시기도 딱 들어 맞는다. 아메리카에 군함이 갔다가 온 시기와 흡혈귀 소문이 난 시기는 불과 3~4개월 차이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서로 본 흡혈귀의 유래

고대 그리스인 들은 죽은 자의 세계와 피를 신비하게 연결시켜 놓았다. B.C.9세기 또는 8세기에 쓰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제9권을 보면 오디세우스가 자신을 도와 줄 유령들을 불러 내기 위해 양을 죽여 피를 모으는 장면이 나온다. 죽은 자의 정령들은 이 피를 마시고 잠시 힘과 활기를 되찾아 오디세우스와 이야기를 한다.

다른 전설과 풍습을 보더라도 피의 소생 능력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 시대까지도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엠푸사, *라미아, 스트리게 등 피에 굶주린 여신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 고전은 이 여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헤카테 여신의 딸인 엠푸사는 청동 발을 가진 괴물이었는데, 잠자고 있는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예쁜 여자로 변신했다고 한다.

라 미아는 벨루스라고 하는 동방의 왕의 공주로 제우스와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질투심이 강한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에게 아이들을 잃었다. 그후 라미아는 아이들을 먹거나 피를 빠는 괴물로 변했다고 한다.(이후 엠푸사와 라미아는 요부나 괴물을 뜻하는 일반 용어가 된다)

한편, 스트리게는 새의 몸을 가진 여자 괴물로, 갓 태어난 아기의 피를 빨아먹거나 잠자고 있는 남자의 생명력을 빼앗아 간다고 한다.

이 런 신화속의 존재들은 오늘날의 흡혈귀와 마찬가지로 잠자고 잇는 생명체의 피를 빨아먹었다. 그러나 이 고대의 신들과 오늘날의 흡혈귀는 아무 관계도 없다. 오늘날의 흡혈귀와 달리 엠푸사, 라미아, 스트리게는 '산송장'이 아니라 육체가 없는 신으로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 인간으로 변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따름이다.



구약성서-피는 곧 모든 생물의 생명이다. (성경 레위기 17:14)

바 빌로니아 시대의 릴리투가 그 이전 시대에 어떻게 그려졌는가 하는 것은 헤브루의 경외전설(구약성서에는 이 부분이 삭제되었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브가 만들어지기 전 아담의 첫째 아내였던 릴리트가 바로 그 원형인 것이다. 성에 어리숙했던 아담에게 화가 난 릴리트는 그의 곁을 떠나 악마의 여왕이 된다. 그녀 역시 라미아와 스트리게 처럼 어린아이의 피를 빨아먹고 잠자는 젊은 남자의 생식력을 앗아갔다.

헤브루인들의 믿음으로 볼 때 릴리트는 살아 있는 생물의 피를 마시지 못하게 한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어기고 있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둔다. 너희는 어떤 생물의 피도 먹지마라. 피는 곧 모든 생물의 생명이다. 그것을 먹는 사람은 겨레 가운데서 추방하리라."(레위기 17:14)

헤브루인들은 언제나 피와 복잡한 관계를 맺었다. 그들에게 피는 생명의 상징이면서 불순함의 표시였다. 피는 신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신성한 것인데, 오직 신만이 생명과 죽음을 주재했다. 동시에 그것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 이래로 인간성을 오염시킨 저주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 저주로 말미암아 인류가 타락했고, 신이 이브의 후예에게 내린 벌인 월경은 바로 불순한 상처의 증거로서 받아들여졌다.

(참고-에덴 동산에서 인간이 신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자 그들은 자신들의 죄의 징표로서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고 신은 그들이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자 처음으로 동물의 피를 흘려 그들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혔다. 그리고 인간에게 저주를 내려 이들을 에덴 밖으로 쫓아 내었다.

이때 흘린 피는 인류의 근본적인 원죄의 상징이며 그때 인간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피를 흘린 동물은 이후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피로 상징되는 원죄를 피로 청산한다는 의미.)

헤 브루 전설에서 월경 때 비치는 피는 다양한 재난의 원천으로 묘사되고 있다. 월경 중인 여성은 사람들 앞에 나다닐 수 없었다. 그 여인이 나타나면 빵이 부풀지 않고, 술이 식초가 되며, 또한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순수하지 않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성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었다. 헤브루인 들에게 피는 영원의 죄와 재앙을 암시했다.

신약성서

' 신양성서'는 예수가 피를 흘림으로써 인류를 구원했다고 가르친다.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를 당하기 전에 예수는 최후의 만찬을 베풀었고, 여기에서 12사도와 함께 피의 상징적인 대체품이라 할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자신의 피가 의미하는 구원성을 강조했다.

" 요한복음"이 피가 가진 재생의 덕목을 강조함에 따라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제물에 관한 해석의 문제를 놓고 싸워야 했다. 혹시라도 인간의 회생이나 식육 의식 같은 비 기독교적인 관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부추기지나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종 교 지도자들만이 이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아니다. 772년 초, 게르만족의 일족인 프랑크족의 왕 샤를마뉴는 이웃의 게르만족인 색슨족을 복속시키려고 누차에 걸쳐 공격한다. 777년 드디어 샤를마뉴 왕은 성공을 거두었고, 785년 비 기독교도인 색슨족에게 무조건 세례를 받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성체화(성찬식 동안 예수의 육신과 피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는 믿음)의 신비와 이교의 믿음을 혼동하여 인간의 살을 바치는 축제한 참가한 자들에게는 죽음을 내렸다. 이렇게 주의했건만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의 관념에는 피에 초자연적 힘이 부여 되어졌다.

따라서 그 힘은 쉽게 악마 숭배, 즉 흡혈귀에 대한 믿음의 원천으로 변할 수 있었다. 11세기, 피의 속죄성에 대한 믿음과 성모 마리아에 대한 사악한 해석으로 악마와 의사는 동일하게 여겨졌고, 처녀들의 오점 없는 피는 온갖 질병을 치유하고 더디게 나이를 먹게 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소설 드라큘라의 모티브-블라드 테페스

14-15 세기 서유럽에서는 흡혈귀 소동이 아주 이따금 벌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1440년 프랑스에서 유명한 질 드 레의 재판이 벌어졌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흡혈귀와 연관되어 거론되고 있다. 그것은 19세기의 프랑스 소설가 조리카를 위스망이 자신의 소설 "라바"(1891)에서 그를 진짜 흡혈귀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잔 다르크의 경비병이었고 프랑스의 장군이었던 질 드 레는 남서부 프랑스에 있는 자신의 영지로 은퇴한 후 연금술에 빠져들었다. 그는 '철학자의 돌'의 비밀이 피 속에 있다고 믿었다.('철학자의 돌'이란 어떤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 상상의 물질이다.) 그러나 실험이 거듭되면서 야만성이 눈을 떠, 그는 이 삼 백 명의 어린이를 무참하게 살해했다. 질 드 레의 이야기는 도깨비의 이미지나 전설적인 살인마 '푸른 수염의 사나이'와 더 비슷하지만 이따금 흡혈귀로 묘사되기도 한다.

흡혈귀와 정말 흡사한 역사상의 인물은 지금의 루마니아에 속하는 고대 왕국 왈라키아의 왕자인 *블라드 테페스이다. 블라드는 두 개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는 테페스(말뚝으로 박는 자)요, 또 하나는 드라큘라(악마 또는 용을 의미하는, 그의 아버지의 이름 드라큘라의 지소사 - 서양에서 용은 불길한 짐승이다.)이다.

블라드는 투르크 제국의 침입에 맞서 용감히 싸운 민족의 영웅인 동시에 단지 재미를 위해 수천 명을 말뚝에 박아 놓은 잔혹한 폭군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인물이었다. 블라드의 끔찍한 악행은 수많은 연대기 작가들에게 좋은 소재를 제공했고, 결국 그는 오늘날의 흡혈귀 신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전설속의 인물이 되었다. 4세기가 지난 후 그의 잔인함에 분노한 아일랜드의 작가 브램 스토커가 소설 '드라큘라'를 썼다.

*블라드 테페스의 피비린내 나는 처벌은 15세기의 독일 연대기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헤로드, 네로, 디오클레티아누스 같은 역사상 가장 피에 굶주린 폭군도 감히 견줄 수 없는, 이로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자행한 블라드가 가장 좋아한 처형 방법은 말뚝에 박기 였다. 때로는 말뚝에 박기 전에 희생자의 몸을 토막내기도 했다.




피로 물든 여 백작-에르체베 바토리

17 세기 초, 2세기 전의 질 드 레 사건과 놀랄 정도로 유사한 일이 헝가리에서 벌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미신이 횡행하던 헝가리에 엄청난 충격을 던진 이 사건은 바로 1611년의 에르체베트 바토리 여 백작의 재판이다. 그녀는 헝가리 산악지대인 카르파티아 산맥의 한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은 체이테성 주변 마을에 살던 수많은 어린 소녀들을 납치, 고문한 죄로 고발당했다.

당 대의 기록에 따르면 그 희생자의 수가 300명에서 8000명에 이른다고 하는데, 아마 실제 희생자의 수는 전자에 가까웠을 것이다. 질 드 레나 블라드 테페스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에르체베트 바토리 사건에도 초자여적인 존재는 없었다. 즉 여 백작을 산송장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희생자의 피를 마시는 일이 그녀에게 엄청난 쾌락을 주었다는 점에는 모든 설명이 일치한다. 그녀는 희생자의 피를 목욕통에 가득 채우고 목욕을 즐겼다. 이것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유지하고픈 욕망에서였다. 바토리 여 백작이 이 비극적인 삶에 빠지기 전, 그녀는 페렌츠 나다스디 백작의 아내였다.

페렌츠 나다스디는 용맹하기로 이름난 백작이었지만 아내에게는 소홀했다. 남편이 전장에 나가 있는 동안 그녀는 마법 공부로 무료함을 달랬다. 그러다가 하인인 토르코의 도움을 받아 농부의 딸들을 유괴, 고문하기 시작했다. 1600년 남편이 죽은 후 바토리는 이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토르코뿐만 아니라 간호사인 일로나 주, 시종인 요하네스 우이바리, 다르불라라고 하는 마법사도 이 일에 참여했다.

10년 동안 수십 명의 소녀가 성의 지하 감옥에 갇혀 엄청난 고문을 당한 후 피를 흘리며 죽어 갔다. 그 지역에서 상당한 수의 소녀가 실종되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1610년 12월 30일, 바토리의 사촌인 기오르기 투르소 백작이 일당의 군인과 기병대를 이끌고 그 성에 도착했다. 막 피의 의식이 진행되는 참이었다.

성 에 들어간 백작은 지하 감옥에서 수십 구의 시체와 함께 온몸에 바늘로 찔린 자국이 수없이 난 채 아직 살아있는 희생자를 숱하게 발견했다. 그 정도로 여 백작은 만족하지 못했는지 많은 수의 소녀들이 아직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가의 친척(그녀의 삼촌이 트란실바니아의 왕자였다.)이었던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여 백작은 모든 창문과 문이 폐쇄된 방에서 남은 일생 동안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다른 공범자들은 전부 처형되었다. 여 백작이 죽은 후 성은 오랫동안 저주받은 성으로 방치되었다. 에르체베트 바토리 여 백작 사건은 그 지역에 온갖 소문과 전설이 나도는 계기가 되었다. 그중 많은 전설은 여 백작이 죽어서도 피의 쾌락을 찾아 계속 나타났고, 결국 진정한 의미의 흡혈귀가 되었다고 전해 준다. 어쨌든 그녀는 스토커의 드라큘라의 원형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영화와 소설의 소재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큘라-은밀한 피를 갈망하는 불멸의 에로티시즘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세상에 발표되자마자 엄청난 성공은 아니지만 그래도 악명을 높이며 광범위한 직역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영 국 언론들은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폴 몰가젯>지는 '뛰어난 작품'이라고 했고, <데일리 메일>지는 차분한 논조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에드거 앨런포의 <어셔 가의 몰락>과 비교했다.

<드라큘라>는 초자연적인 공포 이야기를 갈망하고 있던 빅토리아 시대의 독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요소를 빠짐없이 두루 갖추고 있었다.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보여 주어 엄격한 도뎍률도 만족시켰다. 게다가 온갖 형태의 사악함을 지니고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악마 드라큘라가 조화로운 영국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상황 설정으로, <드라큘라>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외국 것을 혐오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구미에 딱 맞았다.

몇 군데 함축적으로 표현된 이 소설의 과장된 관능성은, 공개적으로 내보일 수는 없지만 엄격한 규범과 도덕률에 갇혀 질식하던 독자들에게 보내는 저저의 은밀한 윙크이기도 했다.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읽어 내려가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교훈적이라는 엉터리 딱지가 붙은 이 소설이 엄청나게 관능적일 뿐만 아니라 파괴적이기까지 했다.

생명의 근원인 붉은 피를 갈망하며 야릇한 분위기로 인간을 유혹하는 드라큐라 백작이 빅토리아 시대의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 다른 주인공들을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 드라큘라>는 출판되면서 대환영을 받았지만 저자 생전에는 신화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드라큘라는 셜록 홈스만한 영광을 얻지 못하고, 브램 스토커는 아서 코넌 도일 경만큼 인기를 얻지 못했다.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신화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은 처음에는 무대, 그다음에는 영화였다.

스토커가 죽은 지 12년 후인 1924년 6월, <드라큘라>가 처음으로 영국의 더비에서 무대 위에 올랐다. 각색은 해밀턴 딘이 맡았다. 그때 드라큘라가 입고 나온 야회복과 검은 망토는 현대 흡혈귀의 표상이 되어 버렸다. 1927년 6월 재공연된 이 연극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해 9월 대서양을 건너가 브로드웨이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 주인공 백작역을 헝가리 배우 벨라 루고시가 맡았다. 4년 후에 만들어진 영화에서 그는 다시 백작 역을 맡아 주인공의 성격을 완벽하게 소화해, 드라큘라가 신화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보증해 주었다.

스토커의 소설을 각색한 최초의 유성 영화는 토드 브라우닝의 <드라큘라>(1931년, 벨라 루고시가 주인공을 맡았다.)이다. 이 영화는 현대 신화의 출발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현대의 신화는 진행되어 왔다.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독일의 표현주의자 F.W.무르나우가 만든 무성영화 <노스페라투>가 있었던 것이다. 토드 브라우닝의 작품 또한 덴마크의 영화제작자 카를 테오도어 드레이어가 '카르밀라'를 원용하여 만든 대작 <흡혈귀>의 그늘에 가리고 말았다. 따라서 현대의 드라큘라 신화가 진정으로 태어난 것은 1931년 헐리우드에서였다.

그 때 그 장소에서 신화가 태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 미국은 역사적으로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다. 1929년 월가의 주식거래소의 주가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수백만 명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미국인의 눈에 비친 드라큘라는 경제위기로 빚어진 증오와 고통을 그 어떤 영화 속의 괴물보다도 잘 집약한 결정체였다. 미국인은 이 혐오스러운 이방인을 모든 사회악의 원흉으로 보았다. 특히, 벨라 루고시의 헝가리인 특유의 악센트와 창백한 안색, 메스꺼운 미소를 보며 그런 생각을 더욱 굳혔다.

영 화의 자극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까지 드라큘라를 주인공으로 하는 미국 대중문학이 쏟아져 나왔다. 슬라브어나 독일어 이름을 가진 드라큘라와 그 아류가 집단 무의식 속에 볼셰비즘과 나치즘까지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원래의 신화와 엄청나게 동떨어진 것들이었다. 1950년 미국의 대중 문화가 공산권을 제외한 전세계로 파고들었다. '미국식 생활방식'의 하나의 종합 편으로서의 드라큘라 신화 역시 해외로 퍼져 나갔다. 흡혈귀 영화가 이탈리아, 에스파냐, 멕시코, 심지어 필리핀에서까지 만들어졌다.

그러는 동안에 드라큘라의 얼굴이 바뀌었다. 1958년 테렌스 피셔가 감독한 <드라큘라>에서 영국 배우 크리스토퍼 리는 전에 벨라 루고시가 맡았던 역을 멋지게 재연했다. 그리고 훗날 론 체이니와 존 캐러딘이 그 역을 재창조하게 된다 .체격 조건이 루고시와 전혀 달랐던 리는 흡혈귀 백작의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해냈다. 후리후리한 키에 희끗희끗한 관자놀이, 제왕의 풍모, 품위 있는 태도와 야만성을 고루 갖춘 50대 남성의 매력적인 특징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전의 드라큘라는 기괴하게 젖혀진 입술 밑에 큼지막한 송곳니를 달고 있었다.

리는 스토커의 주인공을 정말 많은 영화 속에서 재현해 냈다. 그러다나 그 역할에 지친 나머지 <파리의 흡혈귀>라는 클로드 클로츠의 소설을 각색, 에두아르 몰리네로가 감독한 프랑스 코미디 영화 <드라큘라, 아버지와 아들>에서 스스로 자신을 희화화하고 만다. 어쨌던 한 세대 동안 리와 그 역이 너무나 완벽하게 동일시되는 바람에 그의 뒤를 이어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단순이 그를 흉내 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1979년은 드라큘라 영화의 이미지가 분명하게 전환된 해이다. 지금까지의 관례를 깨는 두 편의 상이한 영화가 나온 것이다. 먼저, 독일 감독 베르너 헤르초크의 <흡혈귀 노스페라투>가 나왔다. 이 작품은 일부분 원전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노스페라투 역을 맡은 배우 클라우스 킨스키는 무르나우의 영화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막스 슈레크의 분장을 그대로 재현했다. 즉, 대머리에 뾰족한 귀, 커다란 앞니를 달고, 악몽에나 나옴 직한 얼굴로 등장한 것이다. 두번째로 존 배드햄의 <드라큘라>는 정반대 방향으로 연출되었다. 여기서 프랭크 란젤라는 젊고 매력적인 흡혈귀로 분장했는데, 이 역시 관객을 압도하는 매력을 발산했다.

흡혈귀
전설 에 나오는 피를 빨아 먹는 귀신. 이단자나 범죄자 또는 자살한 자들의 불안정한 영혼이 인간의 피를 마시기 위해 주로 박쥐의 모습으로 밤에 묻힌 장소에서 나와 피를 빨아 먹는다고 한다. 흡혈귀는 새벽에 무덤이나 자기가 본래 있었던 흙이 가득 찬 관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흡혈귀 전설의 밑바닥에는 두 가지 관념이 깔려 있다. 첫째, 악령이 어떤 시체에 붙어서 그것을 사악한 목적에 이용한다는 것이고, 둘째, 너무나 사악한 자의 영혼은 죽은 뒤에도 저승으로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계속 자신의 죽은 시체 속에 남아서 흡혈귀가 된다는 생각이다. 흡혈귀의 전설은 놀라울 정도로 세세하고 구체적이다. 트란실베니아의 흡혈귀는 수척한 모습과 시체처럼 창백한 안색을 갖고 있어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 흡혈귀는 두툼하고 빨간 입술과 뾰족한 송곳니를 갖고 있다. 번쩍이는 눈은 최면을 거는 힘을 지니고 있다. 손톱은 길고 날카로우며 좌우 눈썹이 서로 맞붙어 있고 손바닥에는 털이 나 있다. 입김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겉모습은 창백하고 여위었지만 사람의 피를 빨아먹은 탓으로 초인적인 힘을 갖고 있다. 일부 유럽의 흡혈귀는 한술 더떠서 빨간 머리에 언청이라고 한다.
흡혈귀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소설 [드라큐라]의 소제가 된 트란실베니아의 드라큐라 백작을 들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러시아의 흡혈귀는 자주빛 얼굴을 하고 있으며 생전에 교회에 반항했던 자, 또는 마녀나 무당이었던 자가 죽은 뒤에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슬라브의 여러 민족에게 전해지고 있는 민간신앙중에서도 흡혈귀에 대한 것은 특이하다. '흡혈귀'를 의미하는 슬라브 어는 공통적으로 Qpyr에서 유래하며 이 신앙은 공통의 뿌리를 갖고 있다. 슬라브의 여러 민족 사이에서는 죄인, 주술사, 늑대인간 등은 사후에도 그 육체가 소멸되지 않고 흡혈귀가 된다고 믿었다. 또한 자살 등의 방법으로 죽음을 당하는 자도 마찬가지로 흡혈귀가 된다고 믿었다. 흡혈귀의 사체는 얼굴이 붉고 눈은 크게 치뜨고 있다. 세르비아에서는 흡혈귀와 인간의 여자 사이에서는 뼈도 이도 없는 기형아가 태어난다고 믿었는데, 이아이만이 흡혈귀를 알아 볼 수 있으며 흡혈귀를 죽일 수 있다고 한다. 흡혈귀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묘를 파헤쳐서 사체에 산사나무나 잘 다듬어진 말뚝을 박고 같은 나무를 장작으로 사용하여 태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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