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칼리버 (Excalibur)
중 세 유럽에서의 최고의 영웅 전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브리튼의 왕 아더 일 것이다. 그의 검 엑스칼리버는 6세기 영국에서 활약한 영웅 아더 왕의 전설에 등장 하는 성검이다. 엑스칼리버는 아더 왕과 그 이야기를 상징하며, 지배와 파 괴 그리고 영웅이 지녔던 힘을 상징하는 왕 중의 왕의 무기, 검 중의 검이었 다. 그 이름은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수많은 일화와 함께 중세 영웅 전설의 대표적인 존재라는 지위를 차지했다. 엑스칼리버는 전설의 왕 아더가 왕이 되었을 때 호수의 미녀한테 받아 왕자 모즈레드와 최후의 전투를 벌인 뒤에 호수로 돌려보내졌다. 즉,아더 는 왕으로 있을 동안에만 이 검을 지녔던 것이다.
- 유래 -
엑스칼리버의 전설은 일찍부터 여러 종류가 전해져 왔으나 그 줄거리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6세기 무렵 영국은 로마 제국과 켈트족 지배가 끝나고 각지에서 왕권을 둘러싸고 내란이 일어나던 시대였다. 어느 날 잉글랜드 남부의 솔즈베리에 바위에 박힌 검 한 자루가 나타났다. 그 바위에는 '이 검을 뽑는 자가 브리튼의 진정한 지배자다' 라고 새겨져 있었다. 많은 왕들이 자기가 그 주인공이라면서 뽑아보려 했지만 아무도 뽑지 못했다.
액터경의 장남 케이 경의 종자로 일하던 열 다섯 살 난 아더는 기사들의 마상 시합이 벌어지던 날, 케이 경의 검을 분실하고 말았다. 당황한 그는 잃어버린 검 대신 바위에 박힌 검을 뽑아가려고 했다. 그는 바위에 박힌 검을 너무 도 쉽게 뽑아낸다. 아무도 뽑지 못한 검을 아더가 뽑아냄으로써 그는 훗날 브리튼의 왕이 되었다. 바로 이 검이 왕권의 상징인 엑스칼리버였다.
엑스칼리버에 유래에 대해선 위와 다른 또 하나의 견해가 있다. 아더가 뽑아 낸 '바위에 박힌 검'은 엑스칼리버가 아니며, 아더 왕은 호수의 요정에게 엑스칼리버를 받았다고 한다. 그 때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아더 왕은 전투를 하다가 검이 부러지자 마법사 멀린에게 새 검을 구하고 싶다고 말한다. 멀린이 아더를 조용한 호수로 데려가자 호수에서 팔 하나가 쑥 나오는데 그 손에는 아름다운 검이 쥐어져 있었다. 아더가 그 검을 받아들자 호수의 요정이 나타나 훗날 자기 소원을 들어준다면 그 검을 드리겠노라 제의한다. 아더 왕은 그 제의를 받아들여 엑스칼리버의 소유자가 되 었던 것이다.
엑스칼리버의 위력은 매우 엄청났고, 아무리 많은 갑옷과 부딧혀도 흠집하 나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엑스칼리버가 가진 마력 때문이었다. 쪼 엑스칼리버가 뚫지 못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엑스칼리버에는 가죽으로 만든 칼집이 딸려있었다. 이 칼집에는 주인된 자가 어떤 상처를 입어도 결코 피를 흘리지 않게 하는 마력이 숨겨져 있었다. 즉 엑스칼리버를 주는 것은 용맹하게 싸우라는 것도, 악을 멸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왕국을 지키고 평화를 추구하는 왕이 되라는 것이었다.
- 생김새 -
예전부터 엑스칼리버의 생김새는 대략 푸르스름한 광채 띄는 은색의 칼날과 손잡이와 칼밑은 황금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자루에는 많은 보석이 박혀 있다고 했다. 만약 아더 왕이 실재했다면 그가 살았던 시대는 대체로 서기 500년 전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아더 왕 전설은 12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씌여진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그 내용에는 그 이야기가 씌여진 시대의 풍속이 반영되어 있다. 즉 그가 쓰던 검도 고대의 검이 아니라 중세의 화려했던 시절에 유행했던 형상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엑스칼리버는 아더 왕 이야기를 묘사한 중세 회화나 벽화, 그리고 그뒤 아 더 왕 이야기가 다시 각광을 받았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부터 금세기 초까지 출판된 서적의 삽화 등에서 그 생김새를 볼수있다. 그 자료들에 따르면 기사가 가진 검은 양날 편수검이며, 칼몸은 80cm에서 1m 남짓, 손잡이 부분 은 20~30cm정도, 커다란 칼밑과 둥근 고리가 달려 있다.
아슈켈론 (Ascalon) ;드래곤 슬레이어
용 을 죽이는 영웅에 관한 전설의 영웅들에서 기독교의 성자 중에도 그러한 사람이 있다. 악마의 화신인 용을 죽인 성 조지는 중세의 영국을 수호 하는 성인으로서 숭배를 받았다. 그리고 기사 서임식에서 그 이름이 낭송되는 등 지금도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 유래 -
드 래곤 슬레이어는 '용을 죽인 자'라는 뜻이다. 용을 죽이는 데 쓰이는 무 기는 대부분 검이다. 때문에 용을 죽인 검 자체를 드래곤 슬레이어라 부르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중세 유럽의 가장 고귀한 영웅 성 조지의 검 아슈켈론은 진정한 드래곤 슬레이어라고 했다. 하지만 검 자체에 용을 죽이는 힘이 깃들어져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저 용을 죽일 만한 힘을 가진 영웅이 그 검을 사용했을 뿐이다.
성 조지는 기독교의 7대 영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서기 303년에 순교했다는 성인이다. 영국에서는 14세기에 잉글랜드의 수호 성인으로 정했기 때문에 중세 기사 이야기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진 성인이 되었다. 그의 모습은 애마와 함께 갑옷 차림의 기사로 묘사된다. 방패에는 용을 죽 인 자를 상징하는 드래곤이 그려져 있고, 손에 든 창의 날끝에는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이 펄럭인다. 성 조지와 용의 싸움은 영원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용 퇴치는 악 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한다. 영국에서는 지금도 매년 4월 23일이 '성 조지의 날'로 기려지며 신앙의 대 상이 되고 있다.
성스러운 창 (The holy spear) ;롱기누스의 창
성배 전설에서 예수의 성스러운 잔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로마 병사의 창이다. 그 창은 켈트 신화나 게르만 신화에 등장 하는 신의 창에 대한 이미지와 결합하여 가공할 파괴력과 성스러운 치유 능력을 가진 무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 기원은 켈트의 민화라는 설도 있고 성서라는 설도 있으나 이들 모두 명확한 기원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 유래 -
이 창의 기독교적 기원은 신약성서의 요한복음서이다. 요한 복음서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옆구리를 로마 병사가 창으로 찔렀고, 이때 예수의 배에서 물과 피가 흘러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은 예수 처형을 묘사한 네 복음서 가운데 요한 복음서에만 기록되어 있다. 그후의 민간 전승에 따르면, 이 창으로 예수를 찌른 롱기누스라는 이름의 로마 병사는 눈이 멀어 예수를 증오하게 된다. 하지만 창을 타고 떨어지는 예 수의 피로 얼굴을 씻으니 눈이 회복되어, 그뒤로는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예수와 관련된 성창 이야기에서는 창끝에서 늘 피가 떨어진다는 묘사 는 없으며, 치유 능력을 가진 예수의 기적을 상징하는 것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또 하나의 기원은 켈트 신황의 루라는 신이 가진 창으로서, 이는 파괴와 폭력을 상징한다. 루의 창은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하여 폐허로 만들어 버린다. 아더 왕 전설에 나오는 묘사도 이와 유사하다. 성 스러운 창의 재앙의 일격도 지배자 왕과 왕이 다스리는 지방의 결합을 묘사한 켈트 민간 신앙에 그 뿌리가 닿는다. 왕이 부상을 당하면 그 지방도 파괴되고, 왕이 치유되면 그 지방도 풍족해진다. 왕은 민족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본래 성배 전설 자체는 영웅들이 '요정의 나라에 있는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주는 큰 솥'을 찾아 여행에 나선다는 켈트의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같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성스러운 창이 켈트 무기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성배와 성창을 묘사한 아더 왕 전설은 그 수가 매우 많아 그 공통된 줄거리를 찾기 힘들다. 그중에서 가장 전설과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 작품에서의 성스러운 창은 다음과 같다. 아더가 왕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베이린 경이 어부왕이라 불리 는 왕이 살고 있는 성을 찾아간다. 이 평화로운 성을 방문하는 손님은 누구나 무기를 맡겨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베이림 경은 손님 중에 비열하고 사악하다고 알려진 가론 경이라는 기사가 있는 것을 알고 만일에 대비해서 품속에 단도를 감투고 들어갔다. 한창 연회가 열리고 있을 때 그는 가론 경의 행실에 화가 나 품속에 숨겨둔 단도로 그를 죽이고 만다. 이에 성주는 금지된 무기를 감추고 들어온 베이린 경을 크게 꾸짖고 죽음으로 책임을 지라면서 공격해온다. 베이린 경은 성주 의 공격을 단도로 막았지만 이내 단도가 부러지고 말았다. 맨손이 된 그는 성 안을 도망 다니며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그때 베이린 경이 발견한 무기는 성배와 함께 이 성에 보관되어 있던 성스러운 창이었다. 베이린 경은 이 창으로 어부왕을 찔러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그리고 이 소동으로 성은 무너지고 주위 일대는 초목이 나지 않는 황무지로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후에 어부왕은 갤러해드 경이 가지고 온 성배로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 생김새 -
이야기에는 성스러운 창이라는 것말고는 그 생김새나 재질을 알려주는 내용이 거의 없다. 로마 병사가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고 하므로 로마 시대의 보병이 쓰던 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정도다. 다만 그 창끝에서 늘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성서에 기록된 것은 아니며, 12세기 프랑스에서 씌여진 성배 이야기이전의 기독교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핏방울이 떨어지는 창'이란 켈트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창을 답습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람 (Gram) ;발뭉 ;노퉁크
중세 초의 독일 및 바이킹 시대의 북구에서 최대의 영웅이라면 바그너의 악극으로도 유명한 지크프리트(시구르드)다. 중세의 위대한 영웅 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영웅 전설에도 많은 일화를 간직한 검이 주인공의 이름과 함께 등장한다. 소인이 만든 명검 그람(또는 발뭉)이 바로 그것이다.
-유래 -
이야기는 지크프리트의 할아버지인 뵐숭이라는 왕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북구의 주신 오딘의 자손인 뵐숭은 거인의 딸이며 신의 전사이기도 한 발 키리아의 한 사람이 프료즈와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는다. 아들 지그문트는 달리 견줄 자가 없는 용사이며, 쌍둥이 누이인 시그니는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들은 커다란 나무를 에워싸듯 지은 저택에 살았으며, 그 나무는 '아이의 나무'라고 불렸다. 그의 누이인 시그니가 결혼하는 날, 초라한 망토와 모자를 쓴 외눈박이 사내가 저택으로 찾아왔다. 그 사내는 "이 검을 뽑는 자에게 이 검을 준다"는 말과 함께 검을 '아이의 나무'에 깊이 찔러넣고 저택을 떠났다. 이 사내가 바로 주신 오딘이며, 그 검은 뵐뭉 족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성검 그람이었다. 저택에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검을 뽑으려고 했지만 오직 뵐숭의 아들 지 그문트만이 뽑을 수 있었다. 그리고 후에 지그문트는 왕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들 신피요트리가 독을 먹고 죽고 말았다. 지그문트는 새 아들을 얻고자 효르디스라는 아름답고 현명한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그녀를 아내로 삼고 싶어하는 륭그비라는 왕과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그문트는 륭그비의 군대에 맞서 성검 그람을 휘드르며 선전했다. 그러나 그의 승리를 탐탁잖게 생각한 신 오딘이 창 궁니르로 그의 검 그람을 부러뜨린 탓에 싸움에 패하고 말았다. 지그문트는 이 싸움에서 치명상을 입고 목숨을 잃었지만, 산산 조각이 난 그의 검은 지그문트의 아내이며 지크프리트의 어머니인 효르디스에게 전달되었다. 지그문트는 죽기 직전에 아내에게 검 조각들을 건네주면서, 아들에게 물려주라는 말과 함께 죽었다.
지그문트가 죽은 뒤 아내 효르디스는 지크프리트를 낳았다. 그는 유복자로 태어났으므로 거인의 아들 레긴 밑에서 자랐다. 어느날 지크프리트는 레긴에게 형 파프니르를 죽여서 보물을 빼앗아달라고 부탁받는다. 파프니르는 일찍이 신들이 라인 강의 드워프에게서 훔친 황금을 받아 독차지해버렸다. 그리고 스스로 용으로 변신하여 그 보물을 지키고 있었다. 지크프리트는 용을 죽일 수 있을 만한 검을 만들어 준다면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했다. 레긴은 지크프리트가 건네준 그람의 조각들을 받아 도장의 솜씨를 발휘해 마침내 명검 그람을 다시 만들어냈다. 그람은 그리하여 다시 한번 태어났다. 그리고 그람은 지크프리트의 죽음과 함께 그 후로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람은 지크프리트가 대장간의 쇠받침판을 두 동강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날 카롭기 그지 없었다.
지크프리트는 다시 태어난 그람을 들고 용을 죽이러 나섰다. 그리고 그람의 갈날이 용의 비늘을 제대로 꿰뚫어 그 심장을 도려낸다. 그람의 칼날은 용의 비늘을 뚫을 정도로 날카로왔다.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용을 죽인 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성검 그람은 이승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형식으로 지상에 나타났다가 지크프리트의 죽음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간다. 이야기에서 그람은 그의 명예와 지크프리트 일족의 승리를 가져다주는 검이 었다. 그람의 전설은 독일적인 정신의 모든 것이 표현되어 있다고 평가된다.
- 생김새 -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지크프리트의 검 발뭉크는 손잡이를 포함해서 2m가 넘는다고 되어 있다. '뵐숭 그 일족의 사가'에는 이런 묘사는 없지만, 이야기가 성립할 당시 바이킹의 검이 한결같이 칼몸이 긴 양날검이었으므로 성검 그람 역시 그렇게 생겼으리라 상상할 수 있다. 바이킹의 검은 철제이며 손잡이 위아래에 커다란 칼밑이 달려 있었다. 뒤 쪽, 즉 칼날 반대쪽에 있는 칼밑을 아래 칼밑이라 하고 자루머리가 달려있다. 칼날 부분과 자루 부분은 서로 다른 재질로 되어 있으며, 성능이 중요한 칼 날과 화려하게 장신하는 자루는 각각 다른 곳에서 만들어졌다. 바이킹들이 최고로 평가하던 칼날은 라인 강 연안의 직공들이 만들었다. 성검 그람과 현 대 조링겐의 도검류는 친척지간이라 할 수 있다.
듀란달 (Durandal)
중세 서사시에 등장하는 비극의 영웅 롤랑. 그가 맹활약을 펼칠 때 들었던 무기가 바위도 깨부수는 성검 듀란달이다. 8세기 말 프랑크 왕국을 다스리던 샤를마뉴 대제와 관련해 여러 전설이 전해지는데, 특히 '팔라딘'이라 불린 열두 기사의 존재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뛰어난 영웅들 가운데 롤랑이라는 사내가 있었다. 롤랑은 몸집이 크고 괴력을 가졌으며 자긍심이 강한 남자였다. 전장에서는 용감하게 싸우고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올곧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 무인의 모범이라 일컬어졌다. 그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이상적인 기사였다.
- 유래 -
롤랑의 성검 듀란달은 샤를마뉴에게 하사받은 것이다. 샤를마뉴가 프랑크의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롤랑은 천사에게 이 검을 받는다. 천사는 롤랑을 사자로 삼아 샤를마뉴에게 이 성검을 전하라 고 명했던 것이다. 롤랑은 샤를마뉴에게 돌아가 즉시 그 일을 고하고 검을 바쳤다. 그 검의 뛰어난 품격을 한눈에 알아본 샤를마뉴는 천사한테 받은 검을 다시 롤랑에게 주며 듀란달이라 명명하였다. 롤랑은 감격하여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노라 맹세한다. 그뒤 왕이 가는 곳에는 늘 그가 있어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롤랑이 듀란달을 얻게되는 전말을 다르게 전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온다. 즉 이 검은 요정이 만든 것이며, 괴력을 가진 유토문다스라는 거인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롤랑은 이 거인에게서 듀란달을 빼앗아 샤를마뉴에게 바쳤고, 샤를마뉴는 그 공적을 칭송하여 그 표상으로 듀란달을 롤랑에게 주었다고 한다.
기사 롤랑은 그의 의붓아버지 가늘롱의 함정에 빠져 이슬람의 대부대와 전투를 벌였다. 물론 그는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지만 본대의 안전을 위해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그렇게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롤랑이 이끄는 군대가 3만명인데 비해 이슬람 군은 10만이 넘었다. 하지만 압도적이 병력 차에도 롤랑과 그 부하 들은 잇달아 이슬람 병사를 쓰러뜨리며 선전한다.
하지만 롤랑과 열두 기사가 아무리 찌르고 베어도 밀물처럼 달려드는 적에게 밀려서 차차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열두 기사들도 한 사람 한 사람 쓰러져 갔다. 롤랑은 그제서야 뿔나팔을 불어 후위의 전멸 사실을 알리고 혼자서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는 자기가 죽더라도 왕에게 하사받은 성검 듀란달만은 넘겨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곳에서 적들을 쳐서 쓰러뜨리며 샤를마뉴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샤를마뉴가 가까스로 전장에 도착했을 때 롤랑은 이미 절명한 뒤였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듀란달이 꼭 쥐어져 있어 적에게 등을 돌리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웠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성검 듀란달은 롤랑이 죽은 뒤에도 샤를마뉴 수하의 기사들에게 계속 이용되어 그 광체를 잃는 일이 없었다.
- 생김새 -
성검 듀란달은 엑스칼리버와 마찬가지로 편수검이며 롤랑은 이를 말을 탄 채로 휘두른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기사들은 대부분이 한 손에 방패를 들고 다른 손으로 편수검이나 창을 쓰는데, 이는 전설이 생겨난 8세기에서 12세기경까지 기사들의 일상적인 무장이었다. 황금으로 만든 자루에는 수정이 박히고 자루머리를 뽑으면 그 안에 세 성인의 피, 치아, 머리카락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옷 조각 등의 성유물이 들어 있었다. 칼자루 속에 성유물을 넣는 것은 중세 유럽에 유행하던 풍습으로, 이렇게 하면 검 혹은 검을 든 기사에게 신의 가호가 깃들인다고 믿었다.
듀란달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한 번 내리치면 적의 투구를 쪼개고 들어가 머리를 부순 뒤 사슬갑옷을 찢고 적의 몸을 두 동강을 내며, 나아가 적이 탄 말 의 안장과 등뼈까지 잘라버릴 정도였다.
바위에 박힌 검 (The sword in the stone)
아더 왕의 전설에는 또 다른 유명한 무기가 등장한다. 베이린 경을 파멸에 빠뜨리고, 갤러해드 경에게 찾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검이 바로 이것이다. 이 검을 둘러싸고 켈트 신화의 요정의 마력과 기독교가 전한 신의 기적이 혼합된 세계가 펼쳐진다.
- 유래 -
베이린 경의 이야기에 따르면 본래 검 자체는 켈트 요정의 나라에서 만들어졌다고 되어 있다. 아더가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원탁의 기사단이 생겨나지 않았을 무렵, 베이린 경은 아더의 부하 중에서는 달리 겨룰 자가 없을 만큼 뛰어난 기사였다. 어느 날 아더 왕의 궁정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 그 여성은 멋진 칼집에 담긴 검 한 자루를 무겁다는 듯 꼭 껴안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나중에 갤러해드 경의 차지가 되는 성스러운 검이었다. 그녀는 이 검은 강하고 양심에 거리낄 게 없는 바른 사람, 성실한 진짜 용사 가 아니면 칼집에서 뽑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아더 왕은 우수한 기사들에 게 한 번 도전해보라고 권한다. 이때 아무도 뽑지 못하던 검을 베이린 경이 멋지게 뽑아냈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 강력한 저주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는 검을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성을 물리치고 만다. 그리고 그 직후에 요정의 나라에서 검을 찾으러 온 호수의 미녀를 베어 죽이고 만다. 사실 궁정에 나타난 여성은 요정의 나라에서 복수를 위해 검을 훔쳐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용사에게 검을 뽑아달라고 하여 검의 힘을 복수에 이용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베이린 경은 궁정에서 여성을 베어 죽인 죄로 아더 왕에게 추방을 당하고 방랑에 나선다. 이때 그는 본래 자기의 검과 성검 두 자루를 들고 다녔으므로 '쌍 검의 기사'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베이린 경은 방랑 끝에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동생 베이란과 싸우다가 서로 치명상을 입고 죽었다. 그리고 그의 검은 마법사 멀린에게 들어갔다.
갤러해드 경은 아더 왕의 기사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랜슬롯 경의 아들이다. 그는 힘과 따뜻한 미덕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결점도 극복한 이상 적인 기사였다. 숲 속에서 조용히 자란 갤러헤드 경은 성인의 날에 아더 궁정 캐멀롯으로 찾아 왔다. 마침 그날 궁정 옆을 흐르는 강에 커다란 대리석에 박힌 검 한 자루가 떠내려왔다. 대리석은 그 크기와 무게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물에 떠 있었고, 표면에 는 '이 검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기사를 위한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던 아더 왕은 갤러해드의 허리에 칼집만이 달려 있는 것을 보고 그를 강으로 데리고 나가 그에게 검을 뽑아보라고 권했다. 갤러해드 경은 너무도 쉽게 그 검을 뽑아내어 검의 주인이 되었다. 그 리고 후에 갤러해드 경은 성배를 탐색하러 떠나 성배를 발견하고 성배와 함께 천국으로 올라갔다. 그는 육신을 지상에 버리고 성스러운 존재가 되어 승화한 것이다. 이때 그가 가지고 있던 성스러운 검과 방패도 영원히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 생김새 -
이 성스러운 검은 편수검이며 금으로 된 자루를 가지고 있다. 칼밑은 크고 자루를 위로 하면 황금 십자가처럼 보인다. 자루와 칼집에 많은 보석이 박 혀 있어, 태양빛을 받으면 그것들이 광채를 발하여 검 주위에 동그란 빛무리들이 어린다. 전설에 등장하는 이런 검의 모습은 기독교 십자가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 이다.
하지만 그 검이 갤러해드 경의 차지가 되고 성배 전설에 등장하게 되자, 그 생김새는 기독교 색채를 강하게 띠게 되었다. 때문에 많은 전설을 집대성 한 아더 왕 이야기는 여러 모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해보면 바로 이 검을 둘러싸고 켈트 민간 전승과 기독교 설화, 즉 토착 신앙과 기독교 의 융합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미스텔테인 (Mysteltainn) 발드르는 북구 신화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도 그에 얽힌 설 화는 별로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그의 죽음에 얽힌 일화만이 전해질 뿐이 다. 그의 죽음은 곧 신들의 멸망의 전조로서, 신화 후반부에 상세히 묘사되있다. 그리고 그를 죽인 검의 이름이 미스텔테인이었다.
- 유래 -
발드르는 어느 날 밤 불길한 꿈을 꾼다. 한 괴물이 자신의 생명의 빛을 끄려고 하는 꿈이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 프리그는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발드르를 해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게 했다. 숲 속의 나무, 바위, 동물, 온 갖 질병 등 그 모든 것들이 신들의 명에 따라 발드르를 헤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 다만 신들의 나라의 눈에 띄지 않는 한구석에서 자라던 어린 기생목은 여기에서 제외되었다.
그리하여 발드르에게는 검도 돌도 상처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배반자 로키는 그러한 일을 영 탐탁해하지 않았다. 로키는 즉시 신의 나라 변두리에 서 자라는 맹세를 하지 않았던 어린 기생목의 나뭇가지를 꺾어 발드르의 동생 호드에게 가져갔다. 그때 호드는 그 어떤 것으로도 상처를 입지 않는 발드르를 짓궃게 괴롭히는 축제에 가담하고 있었다. 그리고 축제에게 호드는 로키가 시키는 대로 기생목 가지를 던졌다. 그 순간 나뭇가지는 검으로 변하더니 발드르의 등에 쿡 박히고 말았다. 발드르는 그 자리에서 콰당쓰러져 즉사하고 말았다. 그렇게 발드르가 죽자 신들은 그를 되찾으려고 죽음의 왕과 교섭을 했다. 죽음의 왕은 모든 자들이 발드르를 사랑한다면 되살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로키만은 그렇지 않았다. 이 사건은 라그나로크, 즉 신들의 멸망의 서곡이었다.
상록수인 기생목은 영원한 젊음을 상징한다. 이는 늘 거듭 태어나는 젊음의 불사신 발드르조차 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기생목은 계속 성장해 나가는 인간의 힘을 상징한다.
칼라드볼그 (Kaladbolg)
고대 켈트 신화에 나오는 영웅 쿠 훌린의 적수로 등장하는 암흑의 제왕 페르그스. 그가 가지고 있는 마검은 요정의 나라에서 태어나 쿠 훌린의 창에 필적할 만큼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 유래 -
페르그스가 가지고 있던 칼라드볼그는 켈트 신화의 신들의 나라에서 요정들이 만든 것이다. 이는 여느 신검들과 마찬가지로 초자연적인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검의 이름이 유명한데 비해 페르그스가 이 검을 들고 모험을 하 거나 전쟁을 했다는 이야기는 별로 없다. 페르그스는 울라에 적대하는 마녀 마드가 지배하는 왕국에서 전사로 일하 게 된다. 그리고 성스러운 암소를 둘러싼 전쟁에서 반 울라 연합군의 총사령 관으로 출전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잘 알고 지내던 쿠 훌린이라 싸우는 것을 피하고 싶 었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전장에서 깨끗하게 죽으려고 맨손으로 쿠 훌린이 있는 적진에 맨손으로 다가간다. 하지만 쿠 훌린 역시 고향의 전사를 죽일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제안한 것이 싸우는 척만 하는 전투였다.
어느 날 페르그스가 이전의 약속대로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을 가다가 쿠 훌 린을 배후에서 공격하려는 마법사의 공격을 방해하여 쿠 훌린을 돕는다. 때 문에 그는 마녀의 신뢰를 완전히 잃고 만다. 페르그스가 부하들을 죽게 내버려두고 전장에서 도망쳤다는 소문이 온 아 일랜드에 퍼지고 그의 신망은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의 검 역시 그 이후로 전설에도 등장하지 않게 된다.
- 생김새 -
검에 대한 알려진 일화가 없는 만큼 그 생김새를 묘사하는 내용도 볼 수가 없다. 쿠 훌린의 시대, 즉 기원 1세기경의 켈트 민족의 전사가 어떤 무장을 갖추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로마에 저항하던 그들은 대부분 갑옷을 입지 않고 창, 검, 청동 방패를 들고 이륜 전차를 탔다. 전차를 타면서 한 손에는 방패를 들어야 했으므로 그 검은 아마도 양날 편수 검이었을 것이다. 페르그스의 마검은 색다른 특징이 없는 만큼 아마도 이 켈트의 편수검과 같 았을 것이다. 재질은 철이며 칼자루는 황금이었으리라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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